2016년 5월 29일 일요일

이제 우리들의 잔을 [이청준]~

이제 우리들의 잔을 [이청준]인간의 진실과 운명을 향한 도저한 사유, 그 쉼 없는 열정한국 소설 문학의 큰 산, 소설가 이청준이 일궈놓은 40년 문학의 총체 [이청준 전집]지난 2008년 7월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문학을 보전하고 재조명하고자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운 구성과 장정으로 준비한 [이청준 전집] 시리즈 가운데 5권 장편소설 [이제 우리들의 잔을](2011)이 출간되었다.이야기의 병립과 교차로 관습적 구도에서 벗어나,현실의 표면과 심층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이청준 초기 장편소설.신문연재소설의 틀 안에서 글쓰기의 조건에 대한 자의식을 담금질하다.[이제 우리들의 잔을]은 1969년 11월 15일부터 1970년 8월 14일까지 [조선일보]에 '원무'라는 제목으로 총 230회 연재된 신문연재소설로, 이후 1978년 예림출판사에서 '이제 우리들의 잔을'이란 제목을 달고 첫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단행본 출간 당시, 신문 연재시의 총 16장이었던 전체 구성이 총 10장으로 재편되었고, 등장인물의 비중 변화나 에필로그에서의 재언급 등 적잖은 텍스트의 변모도 거쳤다.[이제 우리들의 잔을]은 무불 스님이 주지로 있는 여래암이라는 한 암자의 별채를 배경으로, 가을의 적막이 깃든 산길에서 시작해 지난한 봄기운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저마다의 이유로 그곳에 흘러들어온 군상들이 펼쳐 보이는 이야기이다. 고시생 허진걸, 시골 면장 출신으로 국회의원에 출마와 낙선을 오가는 김의원(김삼응), 전직 신부 안 선생, 사촌누이를 범하고 고향에서 쫓겨나온 노 군(노명식) 등이 기숙하고 있던 여래암에 지윤희라는 젊은 여성이 요양차 찾아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고시생 허진걸과 지윤희의 연애를 축으로, 서울에 있는 또 다른 여인 배경숙과 고향의 약혼녀 명순 등이 등장하면서 연애의 갈등 구조가 형성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모두 작품 속 C일보에 연재되는 연애소설을 따라 읽고 있으며, 소설은 각 인물들의 발화를 통해 신문연재소설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작가의 비평적 접근이 함께 수행되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의 신문소설 작가의 발언에는 자신 역시 신문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자의식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여기에 외부의 이념에 종속된 허구의 산물로서의 자서전(김의원)과 표현의 욕망에 내재된 나르시시즘적 쾌락의 산물로서의 일기장(노 군)이라는 다른 형태의 글쓰기와 진술이 더해지면서 작가 이청준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자기반성의 진정성과 실천이란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소설의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신학을 공부하러 떠나는 노 군, 수계를 받고 새로 여래암의 주지가 되는 안 선생, 불교계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러 산을 내려가는 무불 스님, 친구 경식의 등장으로 쫓기듯 하산하는 허진걸 등 인물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마치 원환의 구성처럼 또 다른 구성원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며 여래암 이야기를 이어간다.이렇듯 이청준의 초기 장편 [이제 우리들의 잔을]은, 연재 당시의 풍속과 인간 군상의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이청준 작품 세계의 주요 모티프들을 한데 담고 있기에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가령 이 작품에서 자서전 쓰기의 불가능성의 문제는 '언어사회학서설' 연작에서 더욱 심화되고, 또 소설 쓰기, 글쓰기의 일반적 차원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연애의 불가능성의 문제는 [젊은 날의 이별](원제 [백조의 춤]), [사랑을 앓는 철새들]에서 좀더 분명한 서사적 윤곽을 띠며 변주되고, 예술의 불가능성의 문제는 '남도 소리' 연작으로 이어진다. 안 선생을 통해 제시된 '신념의 우상'의 문제는 [소문의 벽]과 [자서전들 쓰십시다] 그리고 [당신들의 천국]에서 전면적이고 구체적 성격을 띠며 전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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